법조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전문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직책을 맡는 것이다. 때문에 법조인 양성 제도는 언제나 사회적 관심과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과거에는 사법시험이라는 단일한 관문이 있었고, 이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불리며 수많은 청년들에게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정착되었지만, 사법시험 폐지 이후에도 그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로스쿨 제도는 과연 법조인의 질을 높였는가? 사법시험은 정말로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였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 법조인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어떤 제도가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가? 이 글에서는 로스쿨과 사법고시라는 두 제도를 비교하고, 그 역사와 장단점,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며, 법조인 양성 시스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자 한다.
제도는 변했지만 이상은 그대로인가: 사법시험의 역사와 의미
사법시험은 1963년부터 시행된 대표적인 국가 자격시험으로, 법조인을 선발하는 주요 통로였다. 고등고시 사법과로 불렸던 초기에는 극소수의 인재를 선발해 엘리트 중심의 법조계를 형성했지만, 1980년대 이후 응시자 수가 급증하며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법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응시할 수 있었고, 순수하게 시험 성적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계층 간 이동의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점점 시험이 고시 낭인 문제를 양산하고, 실무 교육과의 괴리, 법률가의 질적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제도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법이 통과되면서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었고, 2017년 사법시험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사법시험은 학벌과 배경에 관계없이 오직 실력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수년간의 고시 준비로 인한 사회적 비용, 시험 중심의 이론 교육, 현실 법률 문제 해결 능력의 부족 등 여러 한계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사법시험 부활을 외치는 목소리가 남아 있는 이유는, 단지 제도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사회의 공정성과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의 결과: 로스쿨 제도의 도입과 그 그림자
로스쿨 제도는 미국식 법학전문대학원 시스템을 도입한 모델로, 학부 졸업 이후 다시 3년간의 법학 교육을 이수하고 변호사시험에 응시하는 구조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이론보다는 실무 중심 교육을 강화하고,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법조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입시에서부터 면접, 서류, 학점, 어학 능력 등 다면적 평가가 이루어지며, 기존의 점수 중심 사법시험과는 대조적인 평가 방식이 적용된다.
로스쿨은 도입 초기에는 기대를 모았다. 실무 역량을 갖춘 변호사 양성을 목표로 하여, 재판 실습, 클리닉 프로그램, 인권 교육 등 실질적인 커리큘럼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도의 한계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첫째는 높은 학비와 생활비로 인한 경제적 장벽이다. 로스쿨 3년 동안의 등록금과 생계비는 상당한 부담이며, 이는 중산층 이하 계층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는 입학의 불투명성과 지역 간 격차 문제다. 상위권 로스쿨에 입학하지 못할 경우, 교육의 질과 변호사시험 합격률에서 격차가 발생하면서 법조계 진입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긴다. 셋째는 변호사시험의 경쟁 과열로 인한 또 다른 ‘시험지옥’의 부활이다. 해마다 응시 인원 대비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로스쿨 내에서도 사실상 고시와 유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로스쿨 제도의 취지인 ‘다양한 인재의 법조계 진입’을 위협하고 있다. 제도의 외형은 달라졌지만, 다시 사법시험 시절의 경쟁 구조와 유사한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선발 방식’보다 ‘양성 과정의 실효성’에 대한 고민으로 논의의 초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법을 말하는 예술: 법조인의 세계를 그린 영화와 문학
법조계와 법률 교육을 주제로 한 영화와 문학 작품은 단지 직업 세계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제도 바깥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갈등, 도덕적 딜레마,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그리고 법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담겨 있다. 특히 로스쿨 제도와 사법시험이라는 제도가 갖는 상징성과 법조인이 처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영화와 문학이다. 이들 작품은 시험 성적이나 스펙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인간적 법조인의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는 한 부부의 이혼 소송이라는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법이 어떻게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에 개입하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단순히 승소를 위한 법적 논쟁을 넘어, 감정적 회복과 책임의 분배, 부모 역할의 정의 등 현실의 문제들을 법이 어떻게 감싸 안아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이 작품은 법조인이 단지 ‘논리를 위한 논리’를 추구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고 삶의 윤곽을 함께 그려나가는 동반자여야 함을 상기시킨다.
이와 유사하게, 영화 ‘레인메이커(The Rainmaker)’는 로스쿨을 갓 졸업한 청년 변호사의 시선을 통해 법조계의 현실을 고발한다. 젊은 주인공은 거대한 보험회사와의 소송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게 되며, 법률 실무의 냉혹한 벽과 부패, 권력의 벽에 부딪힌다. 이 영화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입 법조인의 내면을 조명하며, 로스쿨에서 배운 정의와 실제 법정에서 마주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특히 이상주의와 실용주의 사이에서의 선택, 개인의 윤리와 조직의 압박 사이에서의 고민은 오늘날 로스쿨 제도가 강조하는 ‘윤리적 법조인’ 양성의 핵심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문학 작품에서는 존 그리샴의 ‘타임 투 킬(A Time to Kill)’이 대표적이다. 이 소설은 흑인 소녀를 성폭행한 백인을 살해한 아버지의 법정 재판을 중심으로, 인종 문제, 편견, 지역 사회의 갈등을 심도 있게 다룬다. 주인공 변호사는 법정에서 단순히 법 조문을 해석하는 역할을 넘어서,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뛰어든다. 이 작품은 법이 어떻게 사회적 정의와 윤리적 판단의 교차점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며, 법조인이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현실과 책임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이 외에도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는 에이즈에 걸린 변호사가 부당 해고를 당한 뒤, 소송을 통해 인권을 주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영화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법의 한계, 그리고 법조인의 연대 가능성을 다룬다. 동료 변호사가 처음에는 편견을 갖고 있지만, 소송을 준비하며 인간적인 신뢰와 정의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법조 윤리 교육이 강조하는 가치와 완벽히 일치한다. 법은 객관적인 규칙이지만,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의 감정과 경험이 어떻게 법을 더 정의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말해준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일본 영화 ‘법정에 선 고양이(ねことじいちゃん, The Cat and the Grandpa)’와 같은 작품들이다. 이 영화는 직접적인 법정 드라마는 아니지만, 지역 사회의 노인이 법과 마주하면서 겪는 소소한 갈등을 통해 생활 속 법의 존재를 일상적으로 풀어낸다. 여기서 법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며 공존을 위한 도구로 제시된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 작품 속에서 법조인은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법은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질서를 만드는 도구이며, 법조인은 그 질서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중심에 선다. 영화와 문학은 그런 법조인의 고뇌와 선택을 조명하며, 우리에게 ‘어떤 법조인을 원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로스쿨이냐 사법시험이냐를 넘어서는 질문이며, 바로 우리가 법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된다.
제도보다 중요한 질문: 우리는 어떤 법조인을 원하는가
로스쿨이든 사법시험이든, 제도는 단지 수단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통해 어떤 법조인을 길러내고자 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시험의 형식과 과정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법조인에게 기대하고 있는가이다. 정의, 공정, 전문성, 사회적 책임감, 윤리적 감수성. 이 모든 요소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법조인을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법률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
제도의 완성은 그 제도를 만든 사람들의 철학과 운영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 로스쿨이건, 부활한 사법시험이건, 진정한 의미의 법조인을 양성하려면 입시 경쟁을 넘어서 실질적인 교육 혁신과 법조 윤리의 정립이 뒤따라야 한다. 법은 사람을 통해 구현되고, 그 사람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 제도를 논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법조인의 길'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용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