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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뼈대를 세우다, 행정기본법의 의의와 미래

by 나무와나무 2025. 3. 26.

현대 국가에서 행정은 단순한 문서 작업이나 허가·처분 행위를 넘어,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능이다. 각종 정책 집행, 민원 처리, 인허가, 제재 조치 등 수많은 공공 행정은 국민과 국가 사이의 접점에서 이뤄지며, 그 과정이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행정 작용을 통합적으로 규율하는 '기본법'이 존재하지 않았고, 개별 법률이나 판례에 의존한 채 행정이 운영되어 왔다.

 

이에 따라 행정의 일관성 부족, 권한 남용, 국민 권익 침해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제화의 필요성이 꾸준히 논의되었다. 그 결과, 2021년 9월 마침내 '행정기본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행정기본법은 이름 그대로 행정 전반에 걸친 기본적인 법 원칙과 절차를 규정한 법률로, 한국 행정법 체계의 기초를 공고히 다지는 데 목적이 있다. 본 글에서는 행정기본법의 제정 배경과 주요 내용, 국민과 행정기관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이 법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를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

 

행정기본법의 의의와 미래
행정기본법의 의의와 미래

 

행정기본법의 등장과 핵심적 내용

행정기본법은 행정 전반을 아우르는 최초의 일반법으로, 국가 행정의 방향성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기존에는 개별 행정 분야별로 법률이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 충돌이나 공백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정리할 명확한 기준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유사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행정처분이 내려지거나, 국민이 법 적용의 일관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했다.

 

행정기본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기본 원칙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은 행정의 법률적합성과 비례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투명성과 성실의무 등이다. 행정기관은 반드시 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하며,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처분은 금지된다.

 

또한, 법률에 명시된 처분뿐 아니라 '비형식적 행정작용'도 법의 규제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예컨대 공공기관이 구두로 전달하거나 내부지침으로 운영하는 사실상의 행정조치도, 행정기본법의 테두리 안에서 심사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행정절차에 대한 규정도 중요한 부분이다. 행정기본법은 행정청이 국민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반드시 사전 통지와 의견 제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권리 보호뿐 아니라, 행정청의 오판을 방지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행정기본법은 아울러 행정법상의 권리와 의무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법률의 일반원칙이나 행정기본법의 기본 이념에 따라 해석하도록 하여, 행정법체계 전반의 정합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행정기본법은 과거 불명확하고 분산되어 있던 행정 법령의 체계를 통합하고, 국민과 행정기관 모두에게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법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국민의 권리 보호와 행정의 책무

행정기본법의 제정은 단순히 법률 체계를 정비한 것을 넘어, 국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과거에는 국민이 행정기관의 결정에 대해 불복하려 해도, 명확한 절차나 기준이 없어 막연히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행정기본법은 행정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처분을 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어떤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국민이 보다 체계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특히, 신뢰보호의 원칙은 국민에게 매우 중요한 법적 방패다. 이는 국민이 행정기관의 일정한 처분이나 공표된 정책을 믿고 행동했을 때, 그 기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을 제한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일정한 기간 동안 유예를 약속한 행정기관이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꾸어 불이익 처분을 한다면, 행정기본법에 따라 위법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또한, 비례의 원칙은 처벌이나 규제가 국민에게 지나치게 무겁지 않도록 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예컨대 경미한 위반행위에 대해 과도한 벌금이나 제재를 가할 경우, 이는 행정기본법상 비례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은 행정기관이 제재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적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도록 유도하며, 권력 남용을 사전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행정기본법은 행정기관의 책무도 강조한다. 단순히 권한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과의 신뢰 형성을 위해 성실하게 행정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법률로 명확히 했다. 이는 국민과 행정이 수직적인 관계를 넘어서, 상호 협력적이고 책임 있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된다.

 

행정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실제로 행정처분을 둘러싼 분쟁에서 이 법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는 행정이 보다 합리적이고 국민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행정권 남용과 행정기본법의 의의

행정기본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행정 권력의 자의성과 권한 남용은 종종 사회 문제로 비화되었으며, 이는 영화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도 자주 다뤄지는 주제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행정의 불합리함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행정이 왜 법적 기준과 절차에 근거해 작동해야 하는지를 감정적으로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법률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권력이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행사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생생히 재현함으로써, 법 제도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킨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법 신뢰 위기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공권력 행사에 대한 법적 통제 장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대학 교수였던 주인공이 사법제도와 행정조치에 저항하게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표면적으로는 재판 과정에 대한 불신을 조명하는 작품이지만, 그 속에는 행정기관이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것이 한 개인의 인생을 얼마나 급격히 파괴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메시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자 여러 행정 및 사법적 절차를 밟지만, 기관은 형식적인 절차만을 강조하며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무관심하다. 이러한 현실은 행정이 단지 정해진 규정만을 반복할 뿐, 국민의 권익 보호라는 본질적인 목적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만약 이 사건이 행정기본법이 제정된 이후에 발생했다면, 주인공은 사전 통지, 의견 진술권, 신뢰보호 원칙 등의 법적 틀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행정기본법은 행정기관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자의적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틀을 제공함으로써, 이와 같은 비극적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법적 기초를 마련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된 윤태호 작가의 웹툰 원작 드라마 "이끼"다. 이 작품은 외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행정권력을 사유화한 마을 이장의 실체를 주인공이 파헤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지방 자치단체장, 경찰, 주민 간의 얽히고설킨 권력 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정력이 정당한 감시와 규제 없이 행사될 경우, 공동체가 어떤 식으로 변질되고 파괴되는지를 강렬하게 묘사한다.

 

드라마 속에서 마을 주민들은 오랜 시간 동안 행정권을 장악한 이장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에 의해 자유와 권리를 억압당하며 살아간다. 주민들은 불합리한 세금과 규제, 폭력적 감시와 은폐에 시달리지만, 법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수단이나 지식이 없어 수동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도시에서 온 outsider로서 이 구조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마을에 감춰졌던 불법적 행정 행위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끼"는 공권력이 지역 단위에서도 충분히 위협적인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권력이 무제한적으로 유지될 경우 공동체의 민주적 기능이 무너진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행정기관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국민의 기본권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만약 당시 이장과 경찰, 지방 행정기관이 행정기본법에 명시된 원칙들에 따라 운영되었다면, 마을 주민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절차적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권력의 사유화도 사전에 차단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영화와 드라마는 행정기본법이 단지 이론적인 법률이 아니라, 실제 국민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 장치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행정기본법은 자칫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법률적 원칙들―적법절차, 비례성, 신뢰보호, 성실의무 등―이 어떤 실질적인 보호 장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어, 이러한 콘텐츠들은 매우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 된다.

 

나아가 이들 작품은 단순히 법적 정의 실현의 중요성을 넘어서, 권력과 권리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국민은 법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아야 하며, 국가 권력은 법이라는 경계 안에서 절제된 방식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행정기본법은 이 같은 균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법률이며, 그 의의는 단순한 절차의 통일성을 넘어, 국민의 존엄과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

 

결국, 영화 속 비극적인 행정권 남용의 사례들은 법 제도의 미비와 공백이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행정기본법은 그러한 공백을 채우고, 국민의 권리를 보다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법률적 진전을 상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행정기본법은 현실에서 다양한 사례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고 실효성을 갖추어야 하며, 이를 위한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와 법 해석의 축적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론: 행정기본법의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

행정기본법은 한국 행정법 체계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법률이다. 그동안 개별 법령에 흩어져 있던 행정의 원칙을 통합적으로 정리하고, 행정의 예측 가능성과 국민의 권리 보호를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이 법은 행정기관에게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권한 행사를, 국민에게는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이를 지킬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제공함으로써, 국민과 행정 간의 건강한 관계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행정기본법은 아직 시행 초기 단계이며, 행정관행과 법적 해석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아 해석상의 혼선이 생길 여지가 있다. 또한, 이 법이 실제 현장에서 잘 지켜지기 위해서는 행정공무원들의 교육과 인식 개선이 동반되어야 하며, 행정심판위원회와 법원이 적극적으로 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행정기본법은 단지 행정 절차의 효율화를 위한 법이 아니다. 이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고, 국가 권력이 법의 틀 안에서 운영되도록 만드는 헌법적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 행정기본법이 국민과 행정 모두에게 신뢰받는 법률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행정기본법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발전해 나간다면, 우리는 보다 투명하고 정의로운 행정 질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