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준비하거나 이제 막 농촌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무엇을, 언제 심을 것인가’입니다.
초보 귀농인은 주변에서 “무조건 상추나 고추부터 해보라”는 말을 듣지만, 막상 시작하면 기후, 수요, 수확 시기, 병충해 등 변수에 압도됩니다.
성공적인 귀농은 작물을 심는 타이밍과 로테이션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결정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 귀농인이 계절별로 어떤 작물을 심고 수확하며,
시기별로 어떤 전략을 세우는지 1년 재배 캘린더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단순히 ‘언제 뭐 심어요’가 아니라, 판매 시기, 노동 강도, 수익성까지 함께 고려한 현실적인 정보를 담았습니다.
1~2월 (겨울): 준비와 계획의 시기
겨울은 농사가 멈춘 시기가 아니라, 다음 해를 준비하는 핵심 기간입니다.
노지에서는 재배가 어렵지만, 시설하우스를 가진 경우 상추, 청경채, 얼갈이배추 등
저온 재배가 가능한 작물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 주요 작물:
하우스 상추, 쌈채소
시금치 (노지 월동재배 가능)
비닐하우스 대파, 미나리
✅ 할 일:
작물 선정 및 종자 주문
퇴비 살포 및 밭갈이 준비
농기계 정비, 비닐하우스 보수
이 시기에 어떤 작물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연간 수익의 시작이 결정되므로, 시장 트렌드 분석과 작형 계획이 필수입니다.
농사 초보자는 성장 속도 빠른 잎채소부터 시작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3~4월 (초봄): 파종과 육묘 시작
✅ 주요 작물:
상추, 열무, 얼갈이, 청경채
감자(3월 중순~4월 초 파종)
완두콩, 강낭콩 (서늘한 봄 기후 적합)
고추·토마토 육묘 시작 (노지 정식 대비)
✅ 체크포인트:
하우스 없이 심을 경우, 늦서리 대비 필요
모종은 직접 키우기보다 지역 육묘장 구매도 고려
이 시기의 작물은 소량 다품종 전략이 유리합니다.
도매보다 로컬푸드 직매장, 개인 판매가 적합한 시기입니다.
5~6월 (초여름): 본격적인 수확과 판매 시작
이때부터는 농촌이 가장 활발해지는 시즌입니다.
5월은 수확과 정식이 겹쳐 노동 강도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이며,
귀농인에게는 첫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 주요 작물:
상추, 열무, 청경채, 얼갈이 수확
감자 수확 (남부 기준 5월 하순~6월 초)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등 정식
옥수수 파종
✅ 전략:
새벽 작업 시작 → 오전 배송
시장/직거래처 확보 중요 (계약 재배 시점 포함)
귀농 초보자는 이 시기에 체력 분배를 잘못하면 탈진할 수 있습니다.
하루 작업 계획을 짜고, 작업 일지와 수익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7~8월 (한여름): 수확의 정점, 병충해와의 전쟁
✅ 주요 작물: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
단옥수수 수확
참외, 수박 (시설 재배 시)
✅ 주의사항:
진딧물, 총채벌레, 역병 발생률 ↑
주기적 방제, 병해 예찰 필수
이 시기의 수확은 돈이 되는 구간이지만,
노동 강도가 너무 높아 1인 귀농인에게는 체력적 한계가 오는 시기입니다.
간편 수확 가능한 작물 위주로 구성하거나, 수확 대행 인력 확보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9~10월 (가을): 수익 안정화와 가을 작형 준비
여름 작물이 끝나고 가을 작형 작물로 넘어가는 전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시장 단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출하량 조절과 품질 중심 전략이 중요해집니다.
✅ 주요 작물:
가을배추, 무, 가을상추, 브로콜리
고구마 수확 (9월 하순~10월 중순)
대파 정식
✅ 전략:
배추·무는 김장철 수요를 노려야 함
출하 시기 조절 → 11월 초 고단가 시기 노리기
이때는 노지 재배가 가장 안정적인 계절이라
재배 초보자에게도 수확 성공률이 높습니다.
특히 고구마는 비교적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이 쉬워 귀농인의 효자 작물로 꼽힙니다.
11~12월 (초겨울): 마무리, 저장, 정산의 시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작물 재배는 종료되고,
이 시기는 수확물 저장, 연간 수익 정산, 내년 작형 설계가 주가 됩니다.
✅ 주요 작업:
저장작물 정리 (고구마, 배추, 무)
내년 재배 계획 수립
정부 지원사업 신청 준비
경영일지 마감, 세무 정리
✅ 이 시기 추천 작물:
하우스 재배 시: 겨울 상추, 미나리, 부추
씨감자용 감자(춘파 대비 저장)
이 시기에는 일을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체력 회복 + 지식 정비 + 재정 정리를 위한 시간으로 보내야
다음 해에 더 안정적인 농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귀농 작물은 ‘언제 심을까’보다 ‘왜 심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귀농 1년 차에 대부분의 초보자들이 범하는 가장 흔한 실수는 “사람들이 많이 심는 작물을 나도 심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고추가 좋다고 하면 고추를, 상추가 낫다고 하면 상추를 심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따라가기만 하면, 결과는 거의 항상 노동에 비해 수익이 적거나, 작물이 남아돌아 손해를 보는 경우로 끝나곤 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작물을 심는 시기나 종류보다
그 작물을 왜 심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작물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역량과 체력, 유통 구조가 갖춰져 있는지를
먼저 따져보는 능력입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재배 캘린더는 단순한 달력이나 일정표가 아닙니다.
실제로 귀농인이 생존을 위해 한 해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그 안에서 수익과 노동량을 어떻게 분산시켜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작물을 심고, 얼마나 팔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전략표입니다.
작물은 땅에 심는 것이지만, 귀농이라는 삶은 그보다 더 넓은 맥락에 심어집니다.
삶의 리듬, 건강, 외로움, 재정, 관계와 같은 복잡한 요소 속에
작물 재배는 하나의 축일 뿐입니다.
따라서 귀농을 결심하기 전에,
단순히 “농사 짓고 싶다”는 감정이 아니라,
“나는 어떤 이유로 이 작물을 선택하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 삶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자기만의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지금 귀농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글이 단지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한 해를 살아낸 사람의 전략과 시행착오를 담은 지침서로 느껴졌기를 바랍니다.
귀농은 낭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계획하고, 준비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간다면
도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삶의 질과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매년 똑같은 농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계절마다의 선택이 인생을 조금씩 바꾸는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당신이 어떤 작물을 심을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작물을 왜, 언제, 어떤 마음으로 심는가가 진짜 귀농의 핵심입니다.
이 글이 귀농을 시작하려는 당신에게
실패하지 않는 첫 단추가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